공직자에게 '퇴근 없는 24시간'을 요구하는 사회,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얻는가
어느 평범한 주말 저녁, 퇴근길 지하철에서 만난 한 공무원 A씨의 씁쓸한 미소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의 손을 잡고 행복한 표정으로 걷는 부부를 한참 바라보더니, 작은 한숨을 내쉬더군요. “저도 언젠가는 주말 저녁에 가족과 함께 여유롭게 장을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요. 주말에도 비상 대기거나, 밀린 업무를 처리해야 할 때가 많으니까요.” 그의 눈빛에는 시민을 향한 책임감과 더불어, 개인적인 삶에 대한 깊은 아쉬움이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던진 “공직자는 24시간 일해야 한다. 퇴근은 없다”는 발언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일견 공직자의 헌신을 강조하는 메시지로 들리지만, 한편으로는 과도한 요구이자 현실을 외면한 발언이라는 비판도 쏟아져 나왔습니다. 과연 24시간 일하는 공직자상(像)은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우리는 이 논의를 통해 무엇을 얻고 또 무엇을 잃게 될까요? 20년 가까이 우리 사회의 굵직한 현안들을 취재하며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온 기자로서, 이 문제의 이면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왜 이 발언은 우리 사회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왔을까요?
이재명 대표의 발언은 공직자의 '책임감'과 '헌신'이라는 오랜 가치를 다시금 소환하며 논쟁의 불씨를 지폈습니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 서비스의 특성상, 시민들은 공직자들에게 높은 도덕성과 봉사 정신을 기대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재난 상황이나 위기 시에는 공직자들의 비상한 근무 태세가 요구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발언은 동시에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의 가치관과 충돌하며, 공직자 개인의 삶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2023년 통계청의 '국민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일-생활 균형 만족도는 OECD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퇴근은 없다'는 메시지는 비단 공직자뿐만 아니라, 많은 직장인들에게도 과도한 노동을 정당화하는 듯한 불안감을 안겨주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의 발언을 넘어, 우리 사회가 직업인에게 기대하는 이상적인 모습과 현실적인 삶의 균형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입니다.
공직자의 헌신과 지속 가능한 서비스의 교차점
1. 헌신과 희생, 그 그림자 뒤의 현실
많은 공직자들은 이미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헌신하고 있습니다. 새벽 비상근무, 주말 출장, 민원인의 폭언 등 그들의 고충은 상상 이상입니다. 서울시의 한 구청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박모 주무관(40)은 "때로는 밤늦게까지 일하다 보면 '내가 과연 24시간 일하는 공직자의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면서도, "결국 시민의 불편을 해결했을 때 느끼는 보람 때문에 버틴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희생에만 의존하는 시스템은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번아웃은 개인의 정신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공공 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24시간 근무'가 곧 '최고의 서비스'는 아니다
'24시간 근무'는 물리적인 시간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항상 준비된 자세'와 '책임감 있는 태도'를 강조하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근무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얼마나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일했느냐일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장시간 노동이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창의적인 사고를 방해하여 오히려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경기도청의 한 인사 담당자는 "과거에는 무조건 오래 앉아있는 것이 성실함의 증표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스마트워크와 성과 중심의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3. 젊은 공직자들의 목소리: '워라밸'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
최근 공무원 임용 경쟁률이 낮아지고, 젊은 공직자들의 이탈이 늘어나는 현상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20대 공무원 김모씨는 "물론 공직은 봉사직이지만, 저 역시 개인의 삶이 중요합니다. 퇴근 후에는 자기 계발을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며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다음 날 더 잘 일할 수 있죠. '퇴근은 없다'는 말은 공직을 선택하려는 젊은 세대에게 큰 부담이자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끼게 합니다"라고 솔직한 심경을 밝혔습니다. 이는 비단 젊은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가치관 변화를 반영하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현장의 목소리: '최선'을 다하는 공직자들을 위한 지혜로운 해법은?
행정안전부 소속의 한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대표의 발언이 공직자들에게 더 큰 책임감을 부여하고자 하는 의도였다는 점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공직자들의 사기가 저하될까 염려스럽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당한 보상과 합리적인 근무 환경을 통해 공직자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공행정 전문가인 K대학교 김민준 교수는 "공직자의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헌신이 개인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형태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선진국의 경우, 공공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무조건적인 장시간 근무보다는 업무 재설계, 유연근무제 도입, 심리 상담 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직자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있다"며, 우리 사회도 이러한 논의를 진지하게 시작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습니다.
'퇴근 없는 24시간' 너머, 지속 가능한 공공 서비스를 향하여
이재명 대표의 '퇴근은 없다'는 발언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공직자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그리고 공직자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직자의 헌신은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그 헌신이 소진과 희생만을 의미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얼마나 오래 일하는가'보다는 '얼마나 효율적이고 가치 있게 일하는가'에 주목해야 합니다. 공직자들이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오랫동안 시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24시간 깨어있는 듯한 최고의 공공 서비스를 구현하는 진정한 길일 것입니다. 시민의 기대를 충족시키면서도, 동시에 공직자 개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공공 서비스는 한 단계 더 성숙해 나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논의가 단순히 논쟁으로만 끝나지 않고, 공직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와 발전으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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