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배경으로 한 정부 사무실 내 회의 테이블 위에 놓인 두꺼운 정책 문서.
며칠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만난 70대 어르신이 제게 건넨 질문입니다. "기자님, 요즘 통일부는 대체 뭘 하는 곳입니까? 예전엔 남북 왕래도 잦고, 지원 물품도 오가는 것 같았는데…." 그분의 목소리에는 한반도의 평화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답답함이 동시에 배어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 질문은 비단 어르신만의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오랜 시간 경색된 남북 관계 속에서 통일부의 존재감과 역할에 대한 국민적 물음이 깊어지고 있는 요즘, 여당의 한 의원이 던진 발언이 조용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바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의 "통일부가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 발언은 단순한 의견 표명을 넘어, 우리 대북정책의 근본적인 방향과 역할 분담에 대한 묵직한 논의의 물꼬를 트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대북정책의 지형: 왜 지금 변화의 바람이 부는가?
한반도에서 '대북정책'이라는 단어는 늘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정권의 성향에 따라,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부침을 거듭해왔습니다. 햇볕정책의 따뜻한 봄날이 있었는가 하면, 강대강 대치 국면의 한겨울도 있었지요. 지난 몇 년간, 남북 관계는 대화의 실종과 군사적 긴장의 고조라는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2020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 2023년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 등은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들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현재의 대북정책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정부 부처 간의 역할 분담 문제는 오래된 숙제입니다. 전통적으로 통일부는 남북 교류와 인도적 지원, 장기적인 통일 방안 연구에 집중해왔습니다. 반면 외교부는 국제사회의 대북 공조와 북핵 문제 해결에, 국방부는 군사적 위협 억제에 주력했습니다. 각자의 역할이 명확한 듯 보이지만, 때로는 부처 간 미묘한 시각차나 전략적 불협화음이 노출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정청래 의원의 '통일부 주도권론'은 단순한 인력 재배치를 넘어,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전반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모색하자는 목소리로 읽힙니다.
정청래 의원 발언의 무게: "통일부 주도권"의 의미는?
그렇다면 정청래 의원이 말한 '통일부 주도권'은 정확히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만,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통일부, '평화 지향' 본연의 역할 되찾기
정 의원의 발언은 통일부가 외교부나 국방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북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어 왔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그는 2024년 4월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외교부와 국방부가 통일부를 들러리 세우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통일부가 '평화'와 '통일'이라는 본연의 가치 실현을 위한 정책 주도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강대강 대치 국면에서 자칫 잊힐 수 있는 대화와 교류의 중요성을 다시 환기하려는 시도로 해석됩니다. 일각에서는 통일부가 강경 일변도의 대북 기조 속에서 '대북 제재'와 '인권'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는 듯한 현 정부의 모습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담겨 있다고 분석합니다.
외교부·국방부와의 미묘한 균형추 재조정
대북정책은 국방, 외교, 통일이라는 세 축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정 의원의 발언은 이 세 축의 균형이 현재 기울어져 있다는 진단에서 출발합니다. 외교부가 북핵 문제와 국제 공조를, 국방부가 대북 억지력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통일부가 담당해야 할 대화와 교류의 공간이 위축되었다는 것이지요. 만약 통일부가 주도권을 갖게 된다면, 이는 대북정책의 기조가 군사적 안정과 외교적 압박을 넘어선 적극적인 대화 모색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복잡한 대북정책의 컨트롤 타워가 불분명해지거나, 부처 간의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여당 내부의 목소리들: 변화의 신호탄인가?
정청래 의원의 발언은 단순한 개인 의견을 넘어, 여당 내부에서 현재의 대북정책에 대한 수정론이 고개를 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총선 이후 국정 운영의 방향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커지는 상황에서, 대북정책 역시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물론 당내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의견이 존재하지만, 지금과 같은 대치 국면이 지속되는 것에 대한 피로감이나 새로운 돌파구에 대한 갈증이 엿보인다는 해석이 많습니다. 이 발언을 계기로 여당 내에서 대북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전문가와 현장의 목소리: "신중한 접근" 주문합니다
이러한 논의에 대해 전문가들은 "신중하고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김태형 교수는 2024년 4월 26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대북정책은 어느 한 부처가 독단적으로 이끌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통일부의 역할 강화는 필요하지만, 이는 외교부, 국방부와의 긴밀한 협의와 조율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과거 통일부에서 근무했던 한 전직 고위 관료는 "통일부가 본연의 교류 협력 기능을 회복하고 대화의 창구를 열어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현재의 경색된 남북 관계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라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대북 제재와 압박에 치우쳤다는 비판도 일리가 있으나,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일관된 전략은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라는 대의를 위한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라는 목소리입니다.
새로운 대북정책의 향방: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우리의 역할
정청래 의원의 "통일부 주도권" 발언은 어쩌면 메마른 한반도 관계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일지도 모릅니다. 이 돌멩이가 잔잔한 물결을 일으켜, 더 큰 논의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중요한 것은 단순히 주도권을 누가 갖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끌어낼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지난 수십 년간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 속에서도 묵묵히 일상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언제나 평화로운 한반도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북정책의 변화는 단순히 정부 부처 간의 역할 조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북녘에 있는 동포들의 삶과 우리 미래 세대의 평화로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제 외교, 안보, 통일이라는 복합적인 시각에서 균형 잡힌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정부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회는 치열한 토론을 통해 국민의 삶에 진정으로 기여하는 대북정책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이 길 위에서 우리가 함께 지혜를 모은다면, 언젠가 어르신이 질문했던 "통일부는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라는 물음에 "평화로운 통일을 준비하는 곳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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